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도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국이 USDC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송금·자금관리 인프라로 끌어들이는 사이, 한국 기업은 해외 거래처가 USDC로 대금을 보내와도 이를 어떻게 받고 회계·외환 처리해야 하는지조차 기준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의 기본 개념과 국내 활용법은 스테이블코인 한국에서 어떻게 쓸 수 있나에서 다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늦어지는 이유를 규제, 외환시장, 유동성, 금융 인프라 네 가지 측면에서 정리하고, 한국이 풀어야 할 5가지 과제를 살펴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란? 기본 개념부터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자산입니다. 달러와 1:1로 연동되는 USDT(테더)와 USDC(서클)가 대표적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같은 원리로 1코인의 가치를 1원에 연동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비트코인처럼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형태의 돈’에 가깝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가상자산 업계뿐 아니라 은행과 결제업계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이 쓰이거나 논의되는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해외 송금과 기업 간(B2B) 결제
- 수출입 무역대금 결제
- 디지털자산 거래의 기준 통화
- 토큰화된 채권·펀드 등 금융상품 결제
- 24시간 글로벌 자금 이동과 온체인 결제
9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업비트 인스티튜셔널 서밋 2026에서도 스테이블코인과 전통 금융의 결합, USDC의 역할, 다통화 스테이블코인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가상자산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USDC로 수출대금을 받아도 한국 기업이 막히는 이유
해외 기업이 한국 기업에 수출대금을 USDC로 보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지갑 주소만 있으면 몇 분 안에 송금이 끝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 회계 처리: 받은 USDC를 현금성 자산으로 볼지, 가상자산으로 볼지
- 환전: 어떤 경로로 원화로 바꿀지
- 법인 거래: 법인 명의로 거래소 계좌를 어떻게 열고 연결할지
- 외환 신고: 외국환거래법상 신고 대상인지, 어떤 절차를 따를지
- 자금세탁방지(AML): 송금인 확인과 거래 모니터링을 누가 책임질지
9월 29일 열린 업계 세미나에서는 국내 기업이 해외 거래처로부터 USDC 등으로 무역대금을 받는 상황에 대한 실무적 불확실성이 제기됐습니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제도와 금융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은행이 본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외환시장의 연결고리
이 문제를 가상자산 규제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9월 3일 BOK 이슈노트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외환시장 간 연계성: 글로벌 거래소의 역할을 중심으로」를 발표했습니다. 원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는 행위는 사실상 원화를 달러 표시 자산으로 바꾸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외환시장과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바이낸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가 특정 법정통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직접 거래를 지원하면, 해당 국가의 스테이블코인 프리미엄은 약 0.33~0.38%p 줄었습니다.
- 대신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늘 때 그 나라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등 환율과의 연결은 강해졌습니다.
- 한국은 외국인과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제한돼 있어, 수요 충격이 환율보다 스테이블코인 가격 프리미엄(약 1.67%)으로 주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국내 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지는 김치프리미엄과 같은 맥락입니다.
즉 법인과 외국인의 참여가 늘어 시장 구조가 바뀌면 원·달러 환율에 새로운 변동 요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디지털자산 제도 정비와 원화 국제화, 외환시장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한 이유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이 곧 외환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한국 도입이 신중해지는 배경 중 하나입니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또 다른 벽, 유동성 격차
규제만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 규모와 유동성 차이도 큽니다. 9월 29일 보도된 국내외 거래소 비교 자료에 따르면,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USD1의 24시간 거래대금은 약 5,827만원이었던 반면 바이낸스에서는 약 5억3,190만달러 수준이었습니다. 환율을 감안해 단순 비교하면 1만 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리플의 RLUSD도 국내외 거래량 격차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금융 수단으로 쓰이려면 가격 안정성만큼이나 ‘언제든 원하는 만큼 사고팔 수 있는’ 유동성이 중요합니다. 국내에서만 도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되더라도 쓰임새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발행만으로는 부족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설계의 7가지 쟁점
1코인을 1원에 연동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고 해도, 아래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실제 사용처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 쟁점 | 핵심 질문 |
|---|---|
| 발행 | 누가 원화를 받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가 |
| 준비자산 | 발행량을 뒷받침하는 자산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공개하는가 |
| 상환 | 이용자가 언제든 1:1로 원화로 바꿀 수 있는가 |
| 유통 | 어떤 거래소와 결제망에서 쓸 수 있는가 |
| 환전 |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나 외화와 어떻게 교환하는가 |
| 법인 사용 | 기업이 수출입 대금과 거래처 결제에 쓸 수 있는가 |
| 소비자 보호 | 발행사에 문제가 생기면 이용자는 어떻게 보호받는가 |
9월 29일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토론회에서도 발행 주체만 정할 것이 아니라 유통·상환·결제·환전 인프라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은행이냐 핀테크냐, 발행 주체 논쟁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의 또 다른 축은 발행 주체와 역할 분담입니다. 은행이 참여하면 예금·환전·법인 자금관리 등 기존 금융시스템과의 연결성이 높아집니다. 반면 핀테크와 블록체인 기업은 사용자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강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회사가 모든 기능을 가져가기보다 은행, 핀테크, 결제사, 가상자산사업자가 각자 역할을 나누는 구조가 현실적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정책토론회에서도 유럽 은행권 사례를 바탕으로 이런 생태계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성공을 위한 5가지 과제
지금까지의 쟁점을 정리하면,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섯 가지로 압축됩니다.
① 명확한 법적 지위
스테이블코인이 전자지급수단인지, 가상자산인지, 새로운 금융상품인지부터 정해져야 합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이 부분의 출발점입니다.
② 투명한 준비자산 관리
준비자산을 어디에 보관하고 얼마나 자주 공개할지가 신뢰를 좌우합니다. 해외에서도 준비자산 공시와 외부 검증이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입니다.
③ 은행 시스템과의 연결
원화 입출금, 환전, 법인 자금관리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으면 일상적인 결제수단이 되기 어렵습니다.
④ 글로벌 유동성 확보
국내 거래소 안에서만 거래되는 코인으로는 활용 범위가 좁습니다. 해외 거래소와 결제망,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교환 경로가 필요합니다.
⑤ 기업 결제 사용처
개인 투자보다 기업의 실제 사용처가 더 중요합니다. 수출대금, 해외 공급망 결제, 해외 송금이 연결될 때 스테이블코인의 경제적 가치가 커집니다.
기존 무역대금 결제와 무엇이 달라지나
스테이블코인의 진짜 파급력은 가격이 아니라 돈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해외 송금과 무역 결제에는 송금은행, 중개은행, 수취은행이 차례로 개입합니다. 수출기업 입장에서 두 구조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기존 방식 | 스테이블코인 방식 |
|---|---|---|
| 흐름 | 수출 → 달러 수취 → 은행 환전 | 수출 →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취 → 디지털자산 지갑 → 필요 시 환전 |
| 처리 시간 | 영업일 기준 1~3일 | 네트워크에 따라 수 분 내 |
| 운영 시간 | 은행 영업시간 중심 | 24시간 |
| 국내 제도 | 외국환거래법 체계 정비 | 회계·외환·AML 기준 미비 |
다만 현재 한국에서는 오른쪽 방식의 모든 과정이 자유롭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에 대한 논의와 실제 제도화 수준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US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경쟁 관계일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해도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수단을 쓰고, 해외 거래에서는 USDC나 USDT로 바꾸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경쟁 구도는 ‘원화 코인 대 달러 코인’이 아니라, 원화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거쳐 글로벌 결제로 이어지는 금융 네트워크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싸움이 됩니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과 외환시장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내 금융시장에 생길 변화: 예금토큰·CBDC와의 연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분야는 결제, 송금, 외환, 디지털 금융입니다. 이후에는 토큰화된 채권, 디지털 머니마켓펀드(MMF), 증권형 토큰(STO), 디지털 예금 등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미 예금토큰 기반 지급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는 2026년 7월 테스트 2단계와 관련한 혁신금융서비스를 추가 지정했습니다. 앞으로 한국 디지털 금융의 질문은 ‘코인을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CBDC, 예금토큰,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자산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로 넓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지금 한국에서 쓸 수 있나요?
2026년 9월 현재 제도권에서 발행·유통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없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관련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 단계입니다.
USDC와 USDT는 무엇이 다른가요?
둘 다 달러에 1: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입니다. USDC는 미국 서클이 발행하며 준비자산 공시와 규제 준수를 강조하고, USDT는 테더가 발행하며 거래량이 가장 많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늘면 환율에도 영향이 있나요?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외국인·법인 참여가 제한돼 환율 영향이 크지 않지만, 시장이 개방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승부처는 ‘발행’이 아니라 ‘사용처’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발행하느냐가 아닙니다. 사람들과 기업이 실제로 어디에서 쓸 수 있느냐입니다. 수출기업이 해외 대금을 디지털로 받고, 소비자가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고, 금융회사가 토큰화 상품을 결제하고, 은행과 거래소가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연결할 수 있어야 시장이 커집니다.
한국은 아직 제도를 만드는 단계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유동성과 활용처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무역대금, 해외송금, 기업 간 결제까지 연결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을 넘어 한국 금융 결제 인프라 자체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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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됐으며 특정 가상자산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